-
경훈이는 오늘 내게 두 번 이나 혼이 났다
시작은 모두 경연이의 울음
정의 라는 이름으로 경훈이를 몰아세우는 게 아닌가 잠시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역시나 잠시 뿐이다
내 의지는 확고하고, 나는 역시나 냉정하다
폭력을 통한 강자의 약자에 대한 괴롭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훈이의 비뚤어진 승부욕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경훈이는 내가 준 미션 수행을 위해 집에서 수원역까지 경연이를 데리고 잘도 앞서 걸었다
오산역까지 버스를 타고
오산역에서 똑바로 내리고
오산역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오산역에서 경연이 승차권을 발급하고
수원방향으로 플래폼을 내려가
용산행 직통 열차를 탔다
수원역에서 올바로 내리는 것 까지 미션의 절반을 잘도 수행했다.
물론 처음 하는 것은 내가 도와줬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백화점에서 아내 생일 선물을 고르는 동안에도 경훈이는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경연이를 챙기는 것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고
책임감이 강해 버스나 전철에서도 정류장을 놓칠까 마음을 놓지 않는다
그런 경훈이를 두 번이나 울렸다
방구석에 서서 두려움에 떨며 내게 혼이 나고 있는 경훈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시절 내 모습이다
두려움에 떨며 아버지께 혼이 나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가족회의도 거르고
9시가 되기도 전에 누워버렸다
눈치 빠른 경연이가 옆에 와서 애교를 부린다
눈치는 곧 공감능력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내 눈치를 보는 법은 없다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면
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 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경쟁할 자격이 없다고 몰아 세운 것이 마음에 걸린다
- 아빠도 그랬을 것 같아
- 어떻게 알아?
- 그냥 아빠 얼굴을 보면 알수가 있어!!
경쟁에 대처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다 경훈이가 문득 했던 말이 마음에 꽂힌다
맞다 경훈아
아빠도 그랬는데, 아빠는 너를 왜 몰아세우는 걸까?
과연 이것이 맞는 걸까?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 걸까?
경훈이를 생각하면 많은 생각이 든다
날 닮아서 더욱 맘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