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안순아씨가 18일 오전 서울 방배동의 한 마을 숲에서 인지발달 교육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는 현행 유아교육의 문제점을 얘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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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배 긁고 있을 때가 사고력 크는 시간 (사바누님 인터뷰 in 한겨레신문)나의 이야기/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13. 10. 30. 13:22
“심심해서 배 긁고 있을 때가 사고력 크는 시간”
경기도 수원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안순아 원장을 지난 18일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안씨는 한 해에 200여명을 상담한 적이 있을 만큼 지역에서 소문난 상담가이기도 하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 직전의 아이를 둔 엄마들이, 곧바로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상담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씨를 만나자마자 딸과의 실랑이부터 질문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직장에 다니는 어머님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 없잖아요. 100퍼센트를 기준으로 놓으면 어떤 문제는 ‘들어주기’를 90퍼센트 하고, ‘통제하기’를 10퍼센트 해야 하는 반면, 어떤 문제는 통제를 90으로 하고 10을 들어줘야 해요.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나에게 이미 답이 있느냐 없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들어주기’를 90퍼센트 해 놓고 ‘그래도 어린이집에는 가야 돼’라고 하면 아이는 약이 올라서 울어버리죠. 어느 쪽에 퍼센트를 더 많이 둬야 할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학습에 결손이 생기더라도 아이가 많이 아프면 학교에 갈 수 없다’라는 명확한 답을 알면서도 ‘공부’ 욕심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던 나는 설득에 실패한 이유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이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해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이 맹목적 신념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우선, 유아들에게 꼭 필요한 ‘인지적 학습’이란 게 실체가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영유아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때가 그 사람의 인생에 너무나 ‘결정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결정적’이라는 걸 인지발달의 결정적 시기라고 오해를 하세요. 아니거든요. 인지발달의 첫번째 요건은 ‘성숙’입니다.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지발달 교육을 하는 건 고비용 저효율이에요. 아이에게 ‘발달’이라는 것은 그 단계가 되어야만 깨우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유아 때는 기본 생활습관, 부모자녀 간의 신뢰, 애착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들 인지발달에 지나치게 집중을 해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의무감에 시달리잖아요. 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인데도 장롱, 싱크대에 한글 카드 여기저기 붙여놓고, 알 수 없는 영어 노래를 틀어놓고, 모빌 선택마저도 흑백에서 컬러로 변했다가 전자동으로 넘어갑니다. 유아기부터 인지적 요소를 집어넣어 경쟁을 하기 때문이에요.”
놀다 심드렁해질 때 들어가면 돼
경쟁과 불안, 이 말 앞에서 자유로울 자 누구인가. 사회 전체가 경쟁적 분위기로 돌아가는데, 그 안에서 무엇이라도 교육하려고 애쓰는 건,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공기를 마시는 본능 같은 걸 거다. 그렇다면, 인지발달이 정말로 중요한 거 아닌지 다시 고쳐 물었다.
“엄마들이 신체발육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데, 인지발달은 그렇게 불안해하세요. 어머님들이 갖는 내 아이에 대한 만족감의 지표는 ‘한글을 누가 빨리 떼느냐, 취학 전에 덧셈 뺄셈 누가 빨리 하느냐’거든요. 그러다가 7살 무렵, 아이들의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터지면 부모들은 내가 잘못해서 아이의 재능을 길러주지 못하는 거 아닌가 조급해하면서 뭔가 재능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어디에 ‘등록’하는 것으로 내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시죠. 한편으로는 어머님들이 ‘애들이 심심해하니까 보내는 거예요’라고들 합니다. 아이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으면 좀 심심해도 되잖아요. 심심해서 천장을 보며 배를 긁고 있는 그 시간이 아이의 사고력이 자라는 때인데, 부모들은 절대 그런 시간을 용납하지 못하거든요.”
유아기는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가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다. 하지만 많은 엄마들은 이 시기를 인지발달의 결정적 시기라고 오해하고 이때부터 아이들을 학습전장으로 내몬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하지만 교육도 제때 해야 효과 유아 때는 기본습관 결정 시기
인지발달 교육은 고비용 저효율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일관성 있게 대해주는 게 최고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은 생활 속에서 던지는 질문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바쁘니까 네 맘대로 놀라’고 하면 엄마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싶어한다. 이왕 놀 거라면 그런 환경을 피해서 제대로 놀게 하고 싶은 게 엄마 마음 아닌가.
“아이가 노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어요. 막 노느냐, 잘 노느냐. 막 노는 건 기계와 노는 것, 또 하나는 원하지 않는 시간에, 원하지 않는 형태로 앉아 있는 것, 그게 막 노는 거예요. 잘 노는 건 뭐냐. 심심해하고, 자꾸 생각하려 하고, 집에서 일을 치더라도 뭔가 자꾸 끌어와서 놀려고 하는 거예요. 심심해서 엄마에게 ‘놀아줘 놀아줘’ 해야 하는 거죠. 영유아도 잘 들여다보면 계속 놀아달라고 하지 않아요. 가령,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다 와요. 그리고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놀아요. 놀다가 짜증을 내거나 심드렁해할 때 그때, 부모가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언제 젖을 물릴까를 잘 지켜보다 결정하는 것처럼 놀이도 그 템포를 기다려줬다가 힘든 때를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면서 놀고 또 나오면 돼요. 우리가 놀이에 대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놀이를 귀찮게 생각하는 거지. 놀이에 대한 부모의 양육습관은 자녀가 청소년이 되고 나서도 똑같이 나타나요. 언제 개입하고 언제 빠져야 하는지, 그 판단은 자식을 키우면서 길러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끊임없이 간섭하는 엄마가 되거나, 끊임없이 무관심한 엄마가 되는 거예요. 무관심에는 학원 뺑뺑이도 들어가죠. 많은 어머니들은 나를 통해서 애를 교육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손쉬운 방법’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놀아달라고 해봐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인생 전체에서 너무 짧은 시기예요. 게다가 아이들이 막무가내일 거 같죠? 의외로 잘 알아들어요. 아이들이 막무가내가 되는 이유는 엄마들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조금만 하라고 하고, 어떤 날은 안 된다고 하고, 또 어떤 날은 많이 해도 놔둬요.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매도, 고성도 아니고 ‘일관성’이에요. 기계 매체나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랍니다. 그 습관을 만들어주는 부모의 일관성, 그게 가장 어렵고 부모의 의지력이 발현되는 일이에요.”
일관성, 누군가의 농담처럼 ‘일관성’은 사람한테 쓰면 안 되는 말 아닌가. 대체 어느 누가 아이에게 일관적일 수 있단 말인가. 탄식처럼 이어지는 나의 하소연에 안씨는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아이를 일관성 있게 대하는 게 힘들 것 같죠? 일관성이라는 건 처음에만 힘들지 시간이 갈수록 부모가 이기는 장사랍니다. 하다 보면 점점 쉬워져요. 매를 들거나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에만 빨리 먹혀요. 하지만 그건 시간이 가면서 부모가 지는 장사고요. 왜냐하면, 아이는 부모를 읽어요. ‘우리 엄마는 뭔가 내가 원하면 최선을 다해서 나를 도와주실 거야. 그러나 이거 이거는 안 된다고 하실 거야.’ 아이 마음속에 부모가 이렇게 자리 잡고 있으면 돼요.”
이제, 조금씩 더 맥락이 잡히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다시 또 일어나는 의문. 유아기 때 인지발달과 관련한 학습은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단 얘긴가? 같은 내용의 질문을 표현만 바꿔서 세번씩이나 묻고 또 묻고 있다.
부모랑 30분 있는 시간이 더 효과
“정말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 있다면, 엄마가 생활 안에서 던지는 거예요. 한 시간을 시키든, 최고의 선생님이 와서 시키든 애들은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만 받아들여요.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도 아이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은 부모라는 거죠. 그래서 선생님이랑 10시간 있는 것보다 부모랑 30분 있는 시간이 훨씬 효과가 커요. 아이를 어디에 보내면 많은 걸 얻어 오겠지, 인지적 발달에 영향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가 아무리 그런 교육을 받고 와도 30분을 부모와 제대로 보내지 않으면 그런 건 다 의미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숫자를 놓고 봐도, 학습지 놓고 1, 2, 3, 4… 가르치는 게 빠르겠어요? 과자 5개를 놓고 동생과 나눠 먹어 보라고 하는 게 빠르겠어요.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쓰고 싶어하는 글자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이가 알고 싶어하는 단어는 아이마다 달라요. 정말 인지발달을 시키고 싶으면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잘 잡아내라는 거죠.”
하긴 내 아이도, 조카도 일곱살이 되니까 폭발적으로 글자를 깨쳤다. 후배 딸은 일곱살이지만 아직 좀 힘들어하던데? 의구심의 꼬리가 지워지지 않는 걸 보니, 나도 어지간히 인지발달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글자교육을 시키려 하지 않아도 다양한 ‘문해(文解)활동’을 하는 게 중요해요. ‘너, 7살이니까 이제 읽어라’라고 할 게 아닙니다. 편지를 써서 벽에 붙여놓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 봉지도 읽어주고, 간판도 자꾸 읽어주고, 이렇게 부모가 읽어주기를 꾸준히 한 아이들은 소리를 듣고도 7살에 대부분 한글을 깨쳐요. 받침 잘못 읽고 못 쓰는 건 장기 레이스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리 느린 아이라도 섬세하게 접근을 해주면 결국 다 하거든요.”
그렇다면 언제나 마지막으로 묻게 되는 질문. 이 모든 걸 다 부모가 해야 하나? 왜 모두 엄마가 알아야 하나? 아이 교육을 위해 돈을 들이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어찌 보면 시간과 노력이라는 게 더 힘들지 않은가. 정말 이걸 다 엄마가 해야 하는 걸까. “아이를 키울 때, 부모, 국가, 그 애를 둘러싼 동네, 이 셋 중에서 하나만 제대로 돌아가면 부모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20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크는 걸 지켜보다 보니, 부모가 아이에게 시간과 제대로 된 사랑을 들여야 할 때 들이지 않으면 나중엔 회복이 참 어려워요. 아이와 정서적으로 결속을 강화하고, 좋은 가치를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일은 아이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5 정도 해주면 되는 일인데, 나중에는 10배를 해줘야 가능해지거든요. 아이가 12살 될 때까지는 부모가 저금을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셔요. 사춘기 때 문제가 터졌다, 그건 어렸을 때 쌓여왔던 게 마이너스 통장으로 출금되는 겁니다. 학군이나 나쁜 친구들 같은 환경도 아이를 인정해주는 부모 한 명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를 가장 현명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어른은 바로 부모예요.”
안순아 원장을 만나고 이어지던 주말, 딸아이는 이틀 내내 골골대며 아프다고 하더니 학교도 못 가고 드러누웠다. 한낮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길래 바람을 쐬러 잠시 나가자고 했다. 후드 티셔츠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따라나온 아이가 갑자기, 마법의 막대 같은 나뭇가지를 땅에서 주웠다고 좋아한다. 그 웃음이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순간,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채송아/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나의 이야기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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