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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나의 이야기/어린이도서연구회 2018. 12. 14. 06:43

     

     

     

     

     

     

     

     

    어린이도서연구회 2018 회보글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뛴다.

    특히나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는 아이들은 남자, 여자아이에 상관없이 틈만 나면 뛴다.

    그래서 아이들은 겨울철에 눈이 와도 눈싸움을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뛰놀 수 없는 이유는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에너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올 봄

    4학년, 1학년 두 녀석이 다니는 학교에서 자율동아리에 참여해 보라는 통신문이 왔다. 마침 오랜만에 주말마다 시간을 낼 수 있을 듯 해서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놀고 싶어 ‘주말운동장’ 이라는 이름으로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탈락. 주말에는 지도교사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는 거였다. 지원청에 문의해보니 지도교사가 구지 주말마다 있을 필요는 없다고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듯 했지만, 실제 단위학교에서 반영되기는 어려운 사안이었다. 역시나 어른들이 일하는 때에, 눈에 보이는 곳에서 놀아야 하는 건가...

     

    - 주말동안 아이들에게 친숙하고, 집에서도 가까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다면 정말 좋죠!

    - 가뜩이나 층간소음으로 난린데 너무 좋죠!

    - 요즘 평소에도 학원이다 공부방이다 해서 아이들 뛰놀 수 있는 기회가 없는데 너무 좋죠!

     

    분명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 대한 생각들은 모두 다 가지고 있는데, 그 방법이 닫혀 있었다. 나는 없고 모두 밖에 있는 듯 했다. 사회문제, 학교문제, 학원문제...

     

    - 그래? 그럼 그냥 내가 해 보까?

     

    아이들이 모두들 좋아할 만한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저 머리 뿐이었다.

     

    - 그러다 혹시 애들 다치면 어떻게 할래?

    - 그러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수 있으십니까?

    - 그러다 혹시 애들 문제로 학부모들 간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구지 학부모 서면 동의서 같은 거 받기 싫었다. 내가 아이들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저들끼리, 그 에너지가 이끄는대로 뛰어 놀겠다는데...책임?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건 서로 주고 받지 말자.

     

    처음에는 여러가지를 함께 챙겼다. 아이들 간식은 물론, 축구공, 농구공, 피구공, 단체줄넘기를 위한 긴 줄 등.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축구를 선호했고 그렇게 주말운동장이 축구장으로 변해갔다.

     

    처음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서 4명으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1학년부터 6학년 아이들 20명 정도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별도 홍보 없이도 매주 일요일마다 ,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아이들은 함께 했다.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32주 동안 아이들은 운동장을 뛰놀았고 그 시간이 무려 81시간이 넘었다. 90분 축구경기를 54경기 이상 한 것인데 녀석들은 이것으로도 부족해 내년에는 더 많은 시간동안,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했다.

     

    그동안 참으로 감사한 것은 다행히 ‘그러다 혹시’ 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3시간이 넘게 흙바닥을 뛰놀며 넘어지고 무릎이 까치고 피 나고 소리쳐 우는 녀석들이야 부지기수 였지만, 이로 인해 항의를 하거나 불만을 표현하는 학생, 학부모님들은 없었다. 부상이 심해 병원을 가야 한다거나 다음날 학교를 등교하지 못하는 경우도 없었다. 불만이 있다면 다음 주 부터 안 나오면 (혹은 안 내보내면) 될 것인데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거다. 몸이 가만 두지 않을테니까 ㅎㅎ 아니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험이 우리를 피해가준 것일까?

     

    SNS를 통해 매주 공개되는 이 모습들을 보며 어도연 선,후배님들 포함 많은 분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일기를 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선생님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며 공감능력도 떨어지는 내가 어떻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한 끝에 그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부족한 축구 실력 덕분이다. 대학교 시절까지 과 동아리에서 취미삼아 축구를 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나의 축구실력은 중학교 2학년 수준이다. (지금 6학년 아이들이 내년에는 중1이 되니 그보다는 더 잘한다고 해야 한다 ㅎㅎ) 만약 더 잘했더라면 아이들과의 축구는 시시했을 것이고, 주말운동장을 찾는 이유는 조기축구회를 통했을 확률이 높다. 딱 이만큼 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껴 준 것이다.

     

    분명 난 손흥민보다 축구는 못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보다 우주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독산성에 올라 일출을 함께 하며 자연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조성진보다 피아노를 잘 치진 못하지만 ‘에델바이스’를 리코더로 불며 아이의 오카리나 연주와 협연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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